- 전세계적으로 병용요법 시기 빨라지고 SPC 부각
대한고혈압학회는 올해 선공개한 2022년 고혈압 진료지침 요약본에서 항고혈압제 치료와 관련해 병용요법, 한 발 더 나아가서는 단일제형복합제(SPC, Single Pill Combination)의 선택에 방점을 두었다. 학회 측은 요약본 보도자료에서 “치료 지속성 개선을 위해 하루 한 번 투약 및 단일제형복합제의 사용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연구결과와 국제적 고혈압 진료지침을 준용해 현재 지침에서 언급되고 있는 항고혈압제 하루 한 번 투약과 단일제형복합제의 적절한 사용에 대해 권고등급을 부여해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하도록 권고했다”고 부연했다. 항고혈압제 치료에 이 처럼 병용요법 또는 단일제형복합제 전략이 널리 쓰임받고 있는 이유를 살펴봤다. |
병용·복합제의 시대
한국·미국·유럽 등의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 약물병용 또는 복합제 요법의 적용시점이 앞당겨지면서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이 한국인 고혈압(K-hypertension)의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혈압 환자에서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조기적용은 이미 보편화된 상태다.
국내외 가이드라인에서는 고혈압 환자에게 항고혈압제 병용치료의 일상적인 적용과 함께, 혈압이 160/110mmHg 이상이거나 20/10mmHg의 강압이 필요한 경우 처음부터 병용요법을 시작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의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는 혈압 140/90mmHg 이상부터 병용요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선택의 시기를 더 앞당기고 있다. 더욱이 병용요법의 적용에 있어 순응도가 강조되는 가운데, 여러 성분을 하나의 정제에 혼합한 단일제형복합제의 선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의 병용치료 시작시점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적용시기를 앞당겨 권고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는 미국심장학회(ACC)와 심장협회(AHA)의 고혈압 가이드라인이다. 고혈압의 정의에 수정이 가해짐에 따라 촉발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특히 이를 수용할 경우 우리나라의 고혈압1단계부터 병용요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파장이 만만치 않다.
ACC와 AHA는 새롭게 정의한 고혈압 2단계(140/90mmHg 이상)의 환자, 그리고 목표혈압보다 20/10mmHg를 상회하는 경우에 서로 다른 기전의 2개 약제(2제병용 또는 고정용량복합제)로 치료를 시작하도록 권고했다. ACC와 AHA의 입장에서는 고혈압 2단계이지만, 우리나라로 따지면 1기 고혈압인 140/90mmHg 이상부터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가이드라인에서 고혈압 1단계는 130~139/80~89mmHg 구간이다. 더불어 양 학회는 “대부분의 고혈압 환자에서 처음부터 2개 이상의 약제를 적용하는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이 최선의 치료일 수 있다”며 병용요법으로 치료를 시작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한국의 병용전략 - 단일제형복합제
우리나라 역시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을 치료초기부터 적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는 2018년 고혈압 진료지침에서 “혈압이 160/100mmHg 이상이거나 목표혈압보다 20/10mmHg 이상 높은 고위험군에서는 강압효과를 극대화하고 혈압을 빠르게 조절하기 위해 처음부터 항고혈압제를 병용투여할 수 있다”고 권고했다.
학회는 “고혈압 환자의 3분의 2 이상이 한 가지 항고혈압제로 혈압조절이 되지 않고 서로 다른 기전의 두 가지 이상의 항고혈압제가 필요하다”며 병용요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병용요법의 경우에는 약물 순응도를 개선한다는 측면에서 초치료에 단일제형복합제(SPC, single pill combination)를 고려해볼 수 있다”며 순응도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복합제 전략에 무게를 뒀다.
병용조합
대한고혈압학회는 또한 “기전이 다른 두 가지 항고혈압제로 치료하는 것이 단일약물의 용량을 증가시키는 것보다 혈압조절 효과가 우수하고 모든 종류의 병용요법이 가능하다”며 상호 다른 보완기전의 약제조합을 주문했다.
학회는 우선 권장되는 병용요법으로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 또는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ACEI)와 칼슘길항제(CCB), ARB 또는 ACEI와 이뇨제 △CCB와 이뇨제의 조합을 꼽았다.
대한고혈압학회의 ‘Korea Hypertension Fact Sheet 2020’을 보면,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이 대세를 형성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팩트시트의 항고혈압제 처방패턴 변화를 보면, 2018년 기준으로 한 가지 약제를 처방받는 경우(1제요법)가 40.7%였던 반면, 2제 이상의 항고혈압제 처방은 59.3%로 단독치료보다 우위를 점했다.
세부적으로는 2제요법이 43.2%, 3제요법 이상이 16.1%로 두 가지 항고혈압제를 병용하는 처방이 다수를 차지했다.
병용요법을 약제조합 별로 보면, RAS(레닌·안지오텐신계)억제제 + 칼슘길항제(CCB)가 61.1%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 뒤로는 RAS억제제 + 이뇨제(22.7%), CCB + 베타차단제(5.0%), RAS억제제 + 베타차단제(4.7%), CCB + 이뇨제(3.4%) 등이 순위를 지켰다. 3제요법에서는 RAS억제제 + CCB + 이뇨제(57.0%) 조합이, 4제요법은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 + CCB + 이뇨제 + 베타차단제(75.2%)가 가장 많은 처방기록을 달성한 것으로 보고됐다.
유럽의 선택
유럽 심장학계 역시 가이드라인을 통해 병용요법의 조기적용을 강조한 바 있다. 유럽심장학회(ESC)와 고혈압학회(ESH)는 2018년 가이드라인에서 대부분의 환자에게 2제 병용요법을 권고했고, 순응도를 고려해 단일제형복합제 적용을 우선하도록 당부했다. 즉 약물치료는 2제병용으로 시작하도록 장려하는 동시에 가급적이면 단일제형복합제를 쓰도록 권고한 것이다.
단 쇠약한(frail)환자, 80세 이상 고령, 심혈관 위험도가 낮은 환자, 수축기혈압이 150mmHg 미만인 1단계 고혈압 환자에게는 2제 병용요법을 피하도록 제한을 뒀다. 한편 ESC와 ESH는 병용치료 시에 1차선택할 수 있는 조합으로 △ACEI 또는 ARB와 CCB △ACEI 또는 ARB와 이뇨제를 권고했다.
항고혈압제 병용 국내연구
한편 국내 연구팀이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조합약제들을 비교·관찰한 결과, 병용치료 또는 조합 간에 사망위험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의대 박성하 교수팀이 대한심장학회 저널에 게재한 관찰연구에 따르면, 세 가지 계열의 항고혈압제를 상호 병용해 치료한 결과 사망률의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 다만 RAS억제제와 티아지드계 이뇨제의 조합이 RAS억제제와 칼슘길항제(CCB)에 비해 심부전 및 뇌졸중 위험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의대 박성하 교수(심장내과)·아주의대 박래웅 교수(의료정보학과)·유승찬(박사과정) 연구팀은 최근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에 관한 빅데이터 관찰결과를 KCJ(Korean Circulation Journal)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미국과 한국의 5개 보험청구자료를 기반으로, 고혈압의 첫치료에 2제 병용요법을 6개월 이상 유지한 환자(98만 7983명)를 대상으로 세 가지 병용요법의 임상결과(outcome)를 비교했다.
세 가지 병용요법은 △RAS억제제 + CCB △RAS억제제 + 티아지드계 이뇨제 △CCB + 티아지드계 이뇨제였다. 관찰결과, 병용요법 간에 사망위험의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RAS억제제 + 티아지드계 이뇨제 병용요법은 RAS억제제 + CCB와 비교해 심부전 및 뇌졸중 발생위험이 낮았다.
고혈압 치료에 있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명제 중 하나는 “한 가지 루트만 표적으로 공략하는 단일요법으로는 혈압을 정상화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고혈압학회(ASH)의 보고에 따르면, 354개의 무작위·대조군 임상시험(RCT)을 메타분석한 결과 단일성분 항고혈압제의 평균 강압효과는 9.1/5.5mmHg에 불과했다.
반면 상호보완 작용의 항고혈압제를 병용할 경우 단일약제의 용량을 증가시키는 것에 비해 5배 정도의 추가 강압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에 따라 2제에서 3·4제 병용에 이르기까지 단일질환은 물론 여러 심혈관 위험인자들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는 다제약물요법, 특히 단일제형복합제 전략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상돈 기자 sdlee@mostonli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