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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이 직면한 최대의 혈전

기사승인 [118호] 2022.12.06  12: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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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피도그렐vs아스피린,  HOST-EXAM·HOST-EXAM extended
 단독항혈소판요법 맞춤선택 논쟁에 종지부 찍을까?

 

우리나라에서도 대규모 랜드마크급의 무작위·대조군 임상연구(RCT)에 대한 확대관찰이 이뤄지고, 그 결과가 세계 최고의 의학저널 중 하나인 Circulation에 게재돼 화제다. 과거 서구에서는 UKPDS나 ADVANCE와 같은 대규모 랜드마크 임상연구가 발표된 후 10년가량의 확대관찰을 거쳐 후속결과가 연이어 보고된 바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후속관찰 결과가 선을 보인 것이다.

주인공은 RCT 방식으로 단독항혈소판요법(SAPT, Single Antiplatelet Therapy)을 1 대 1 비교·평가한 HOST-EXAM과 이를 확대관찰한 HOST-EXAM extended 연구다. 지난해 서울의대 김효수 교수팀이 HOST-EXAM 최종결과를 미국심장학회 연례학술대회(ACC 2021)에서 공식발표하는 동시에 Lancet에도 결과가 게재되면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1년만에 다시 HOST-EXAM extended 결과가 미국심장협회 연례학술대회(AHA 2022)와 Circulation을 통해 공식 소개되며 국제적인 반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SAPT 단독요법의 1 대 1 비교관찰을 장기적으로 이어간 HOST-EXAM extended 결과가 아스피린 대 클로피도그렐의 맞춤형 선택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심혈관질환 병태생리

혈전(血栓)은 현대의학이 직면하고 있는 최대의 혈전(血戰) 중 하나다. 혈관 속에서 피가 굳어져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는 이 조그만 핏덩어리(blood clot)가 혈전색전증을 야기하고, 궁극에는 심뇌혈관질환으로 인한 심각한 장애 또는 사망까지 유발한다.

혈관질환을 일으키는 주요 위험인자는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당뇨병, 비만, 흡연 등이다. 이 외에도 유전적 배경이나 노화까지 겹치면 혈관이 녹슬고 딱딱해지며 기름이 끼게 되는데, 이 과정을 거치며 혈관의 구조·기능적 변화가 축적되면 죽상동맥경화증(atherosclerosis)으로 발전한다.

더 나아가 죽상동맥경화증이 유발되면 혈관벽에서 지방선조 - 섬유성 경화반 - 불안정형 경화반이 진행되고 최종적으로는 관상동맥질환, 뇌혈관질환, 심혈관 원인 사망 등의 심혈관사건을 통해 일생을 마치는 병태생리학적 기전을 갖고 있다.

혈전

혈관질환 병태생리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 중 하나가 바로 죽상동맥경화증 발생 이후의 단계다. 여기서부터 혈관벽의 경화반(plaque)과 혈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혈관벽에 경화반이 축적되고 두꺼워져 협착이 진행되면 혈류를 저해하고, 이는 곧이어 저혈류 혈관폐색으로 이어져 협심증의 원인이 된다.

또 불안정형 경화반이 파열될 경우 혈전이 발생하고, 이것이 혈류로 흘러가 뇌혈관이나 관상동맥의 일부를 막아버리면 혈전색전성사건으로 치닫게 된다. 허혈성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을 이르는 말이다.

심혈관질환의 최종단계

심혈관질환 위험인자 → 혈관의 구조·기능적 변화 → 죽상동맥경화증 → 죽상경화반 파열에 의한 혈전색전증 → 심뇌혈관질환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고려한다면 심혈관질환 위험을 줄이거나 막기 위해서는 죽상동맥경화증이 진행되기 이전부터 고혈압·고혈당·이상지질혈증·비만 등을 철저히 예방 또는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심혈관질환 병태생리의 후반부에 위치하는 혈전의 생성을 억제하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마지막 단계의 혈전생성과 이로 인한 색전증을 막지 못하면 심혈관질환의 예방도 힘들어진다. 항혈전치료의 중요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항혈전치료

협심증에서 심근경색증에 이르기까지 관상동맥질환 분야의 항혈전치료에서는 급성관상동맥증후군(ACS) 또는 경피적관상동맥중재술(PCI) 후 시행되는 이중항혈소판요법(DAPT, Dual Antiplatelet Therapy)에 논의가 집중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DAPT 전략을 얼마나 길게 끌고 갈 것이냐와 항혈소판제는 어떤 계열을 선택할 것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DAPT·SAPT의 배경

관상동맥질환으로 PCI 시술을 받은 환자들은 스텐트 삽입병변의 혈전증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항혈소판치료가 수반돼야 한다. 특히 PCI 후 항혈소판요법은 강력한 항혈소판 효과를 위해 아스피린에 P2Y12억제제 클로피도그렐을 더하는 DAPT가 표준으로 사용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DAPT의 적용기간이다. 두 개의 항혈소판제를 동시에 사용하는 만큼, 강력한 혈소판 응집억제 작용에 따른 출혈위험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심장학계에서는 12개월 안팎으로 DAPT의 적용기간에 제한을 두고 있다.

때문에 PCI 후 1년가량의 DAPT 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클로피도그렐이나 아스피린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단독항혈소판요법(SAPT, Single Antiplatelet Therapy)로 전환해 이후 평생동안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SAPT와 관련해 현재까지의 관행은 아스피린의 선택에 무게를 두고 처방이 이뤄져 왔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이 관행이 임상근거에 기반하지 않은 결정이라는 이유를 들어 아스피린의 선택에 이의를 제기하는 주장도 있었다.

임상시험을 통해 클로피도그렐과 아스피린 단독요법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비교·평가해봐야 한다는 것인데, 실제 국내 진료현장에서 두 항혈소판제의 1 대 1 비교를 통해 승패를 가려낸 연구가 바로 HOST-EXAM이다. HOST-EXAM 연구는 앞서 단독요법으로 전환한 후 2년 관찰결과가 발표됐는데, 클로피도그렐 대 아스피린을 놓고 벌어진 혈전(血栓)의 단기관찰 결과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HOST-EXAM

심장학계에서는 DAPT 후 단독요법에 아스피린을 선택해 왔던 것은 불충분한 근거에 기반한 관행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명확하게 결론내릴 수 있는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영구적 SAPT 선택이 진행돼 왔다는 것이다. 때문에 HOST-EXAM 연구팀은 아스피린과 클로피도그렐의 DAPT 후 단독요법 전환, 즉 장기 유지요법에 어떤 항혈소판제를 택하는 것이 유효하고 안전한지를 검증하고자 했다.

연구는 국내 37개 의료기관에서 약물용출스텐트(DES) 삽입시술을 받은 후 혈전사건 없이 DAPT를 6~18개월 동안 진행한 20세 이상 환자 총 5530명을 대상으로 했다. 국내에서 실시된 RCT 가운데서도 단연 최대규모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연구에서는 DAPT 기간 중 허혈 또는 주요출혈 합병증이 있었던 환자를 제외한, 즉 무사히 DAPT를 마친 5438명 환자들이 클로피도그렐 75mg 단독요법군(2710명) 또는 아스피린 100mg 단독요법군(2728명)에 무작위 배정돼 24개월 동안 치료·관찰이 진행됐다. 1차종료점은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비치명적 심근경색증, 뇌졸중, 급성관상동맥증후군으로 인한 재입원, 출혈(BARC type 3 이상)의 복합빈도를 평가했다.

2년 치료관찰 결과, 1차종료점 발생률은 클로피도그렐군 5.7%(152명), 아스피린군 7.7%(207명)로 클로피도그렐군의 상대위험도가 아스피린군 대비 27% 유의하게 낮았다(HR 0.73, P=0.003). 2차종료점으로 평가했던 혈전사건(심혈관질환 의한 사망, 비치명적 심근경색증, 허혈성 뇌졸중, 급성관상동맥증후군으로 인한 재입원, 스텐트혈전증) 역시 클로피도그렐군의 상대위험도가 32% 낮아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를 보였다(3.7% 대 5.5%, HR 0.68, P=0.003).

모든 출혈만 따로 보았을 때도 클로피도그렐군의 상대위험도가 30% 유의하게 낮았다(HR  0.70, P=0.036). 최종적으로 혈전사건과 출혈위험 모두에서 클로피도그렐은 아스피린 대비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HOST-EXAM extended

HOST-EXAM의 본연구는 PCI 후 DAPT 치료를 무사히 마친 환자들을 클로피도그렐 대 아스피린의 SAPT군으로 무작위 배정한 뒤 2년 치료관찰을 진행한 결과였다. DAPT 기간이 끝난 후 클로피도그렐이든 아스피린이든 SAPT로 전환한 뒤부터는 평생동안 치료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장기간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확대관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HOST-EXAM 연구팀은 앞서 구축된 5438명의 코호트를 클로피도그렐군(2710명, 49.8%) 대 아스피린군(2728명, 50.2%)으로 나눠 추적관찰을 실시했다. 양 군 간의 장기간 안전성과 유효성을 분석하는 HOST-EXAM extended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확대관찰 연구의 1차 유효성 평가항목은 모든 원인의 사망·심근경색증·급성관상동맥증후군 발생, 주요출혈사건의 복합빈도로 정의했다. 이어 2차 안전성 평가항목으로 허혈 및 출혈사건을 각각 분석했다. 2014년부터 2022년 3월까지 발생한 모든 임상사건을 분석했으며, 추적관찰 기간은 평균 6년이었다.

분석결과, 클로피도그렐 유지요법의 우수한 효과는 선행연구 기간이 지난 이후에도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6년 관찰결과, 심혈관사건 재발건수 발생률은 클로피도그렐군에서 약 13%, 아스피린군에서 약 17%였다. 아스피린과 비교해 클로피도그렐군에서 심혈관사건 상대위험도가 26% 감소된 것이다. 2차 안전성 평가항목 분석에서도 클로피도그렐 유지요법은 아스피린 대비 허혈 및 출혈사건 발생위험을 각각 34%, 26% 유의하게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주도한 서울의대 김효수 교수(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는 “관동맥스텐트 시술 이후에 평생 복용해야 할 단일 혈소판제로서 아스피린과 클로피도그렐을 직접 비교한 유일한 연구”라며 “선행연구인 HOST-EXAM에 이어 장기 추적관찰을 한 HOST-EXAM extended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클로피도그렐이 아스피린보다 우월해 평생 복용해야 할 약물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고 의미를 밝혔다.

클로피도그렐 vs 아스피린

허혈사건에 의한 심혈관질환 위험을 줄이기 위한 항혈소판요법을 논할 때 P2Y12억제제 클로피도그렐을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클로피도그렐은 관상동맥질환, 뇌졸중 등 심혈관사건 예방에 있어 아스피린을 대체하거나 1차선택으로 사용할 수 있는 표준 항혈소판요법으로 자리하고 있다.

아스피린 대비 클로피도그렐의 우수성은 유효성(항혈소판효과)과 안전성(출혈위험)을 평가한 일련의 임상연구를 통해 입증돼 있다. 클로피도그렐은 심·뇌혈관질환 예방전략의 1차선택인 동시에 유효성과 안전성에 있어 아스피린과 대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아스피린 대비 클로피도그렐의 항혈소판 효과와 궁극적인 심혈관 임상혜택의 차이를 규명한 대표적인 사례는 CAPRIE 연구다. 클로피도그렐과 아스피린 단독요법의 심혈관사건 예방효과를 비교한 임상연구로, 평균 1.9년 관찰결과 클로피도그렐군의 심혈관사건 상대위험도가 아스피린군에 비해 8.7%(P=0.043) 유의하게 낮았다.

반면 과거 절대적 강자였던 아스피린은 심혈관질환과의 전쟁에서 점차 전선을 잃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대표적 사례는 미국 보건당국의 결정이다. 미국질병예방서비스태스크포스(USPSTF)는 올해 ‘심혈관질환 예방 위한 아스피린 사용’ 제목의 최종성명에서 “60세 이상의 고령은 심혈관질환 1차예방을 목적으로 아스피린 복용을 시작하면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Grade D). 60세 이상 고령에서 심혈관질환 1차예방을 목적으로 아스피린 복용을 시작하는 것은 순이익이 없다고 중간강도의 확실성(moderate certainty)으로 언급했다.

이상돈 기자 sdlee@mostonline.co.kr

<저작권자 © THE MOS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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