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대 우영섭 교수 |
1. 치료저항성의 개념
어떤 질환을 치료할때 통상적인 방법으로 잘 치료되지 않는 경우를 치료저항성이라고 하는데, 우울증에서도 치료저항성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정의는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과거에는 ‘치료저항성’이라는 용어보다는 일반적인 우울증의 치료방법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난치성 우울증(refractory depression)’이라는 개념이 먼저 사용됐는데, 이 두 개념은 모두 관해(remission)나 완치를 전제로 환자와 병적 상태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되는 측면이 많다.
각종 연구 등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정의는 ‘서로 다른 계열의 2가지 항우울제를 적절한 용량과 적절한 기간 동안 치료했음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부족한 경우’이나, 연구자들에 따라 일부 다른 정의를 사용하기도 한다.
현재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기준에 대해 공통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문제점으로는 ‘적절한’ 기간과 용량에 대한 별도의 정의가 없다는 것이 있으며, 이 외에도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개념이 다양한 치료약제와 방법들이 사용되고 있는 점을 반영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개념을 약물치료에 국한시키더라도, 항우울제 외에 비정형 항정신병약물 등 비항우울제들이 다양한 지침 등에서 우울증의 치료의 초기단계에서부터 권고되고 실제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현재까지 통상적으로 사용돼 온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정의와 관련된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치료저항성 우울증을 정의하기 위한 연구와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고, 아직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관련 연구들을 토대로 치료저항성 우울증을 단계(stage)별로 구분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2.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역학과 원인
역학
우울증 환자 중 약 30% 정도는 다양한 항우울제 치료에 반응하지 않아 치료저항성 우울증에 속하게 된다.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진단기준과 문헌에 따라 해당 수치는 높아지기도 하는데, 심지어 출판편향 등과 같은 문제로 항우울제 치료 관해율이 실제보다 높게 보고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어 현재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환자들이 치료저항성 우울증일 수 있다.
치료저항성 우울증은 환자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많은 경제적 부담을 지게 한다.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는 일반 우울증 환자보다 40% 이상의 의료비를 더 지출하게 되고, 여기에 재발도 빈번해 부담이 더욱 가중된다.
이 외에도 여러 다른 의학적 동반질환의 증가, 인지기능의 손상, 자살률의 증가, 기대수명의 감소 등의 위험성을 높인다.
원인
우울증의 신경생물학적 원인으로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Hypothalamic-Pituitary-Adrenal, HPA) 축의 이상, 단가아민 등 신경전달물질의 이상, 면역학적 이상, 뇌의 구조적, 그리고 기능적 문제 등이 흔히 거론된다.
최근에는 신경가소성이나 뇌유래신경영양인자(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BDNF), glutamate계, mTOR 신호전달체계 등의 이상도 우울증의 주요한 요소로 제시되고 있으며,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원인도 이러한 일반적인 우울증의 원인론 측면에서 이해되고 있다.
첫번째로 HPA 축의 이상이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원인으로 생각된다.
Glucocorticoid 수용체 저항성은 음성 되먹임을 저하시켜 HPA 축의 과잉활동과 cortisol 수치 상승을 초래해 우울증의 발생에 기여하는데, glucocorticoid 수용체 저항성은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에서 보다 분명하게 관찰된다.
또한 glucocorticoid는 스트레스에 의한 해마의 구조적 변화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두번째로, 면역체계의 이상과 염증반응 역시 치료저항성 우울증과도 관련된다.
면역체계의 교란과 그에 따른 말초와 중추의 염증 상태는 HPA 축 기능이상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여러 면역 및 염증체계 중 염증성 사이토카인은 성상세포와 미세아교세포에서 glutamate 대사와 기능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에서 glutamate 시스템의 이상과 강한 연관성을 보였다.
실제로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에서는 interleukin-1(IL-1), macrophage inhibiting factor(MIF), tumor necrosis factor-α(TNF-α) 등의 염증성 사이토카인과 그 mRNA가 증가돼 있다.
세번째로 최근 우울증 연구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glutamate 시스템 역시 치료저항성 우울증에서 중요하다.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에서 glutamate, glutamine, gamma-aminobutyric acid(GABA) 체계의 이상을 보이며, 그 결과 glutamate-glutamine neuronal-glial cycling의 손상과 세포 외 glutamate의 과잉, glutamate 방출의 감소를 일으키고 결국 피질의 GABA 감소로 이어져 치료저항성 우울증과 관련될 수 있다.
네번째로는 BDNF 수준의 감소가 치료저항성 우울증과도 관련된다.
BDNF 유전자 발현의 감소가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의 혈액에서 관찰되기도 했고, 또한 치료에 반응한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의 혈청 BDNF 수치가 상승했다는 연구결과도 있어 그 연관성에 근거가 되기도 한다.
BDNF는 신경가소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신경가소성의 이상이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원인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뇌의 기능적 영상검사 결과 치료저항성 우울증은 default mode network(DMN) 및 뇌 영역들과 인지 신경망 사이에서의 기능적 연결성 감소와 관련된 것으로 관찰됐는데, 이러한 소견은 삶의 긍정적 사건과 관련된 감각정보를 통합하는데 장애가 있고, 삶의 부정적 사건에 고착되는 반추와 그에 따른 불쾌한 감각을 유발하는 스키마와도 관련돼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외에도 빈약한 사회적 지지, 사회적 적응의 부족, 부정적 생활사건, 정신병적 양상 및 물질남용이 치료저항성 우울증과 관련된 심리·사회적 원인으로 제시된다.
불안장애의 공존, 현재의 자살 위험성, 첫 항우울제에 치료반응이 없었던 병력, 멜랑콜리아 양상의 동반, 양극성 성향, 우울 삽화의 조기 발병, 우울 삽화의 높은 재발률, 관해에 도달하지 못한 이전 삽화 등 또한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위험요소일 수 있다.
3.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치료와 관리
여러 항우울제 치료에도 반응이 충분하지 못한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치료를 위해서는 항우울제의 최적화, 교체 혹은 병합, 그리고 항우울제 외의 다른 약물을 추가하는 강화요법 등의 정신약물학적 치료가 적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약물치료에 집중하는 치료방침은 치료목표를 오로지 증상감소에만 맞추고 있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병전 기능을 회복하는 것과 같은 다른 중요한 요인들을 과소평가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삶의 질 개선이나 기능회복이 불충분한 경우 우울증 증상의 재발과 만성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이러한 지적은 타당한 부분이 있다.
따라서 치료저항성 우울증의 치료에는 약물치료 뿐만 아니라 환자의 기능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심리·사회적 치료 또한 필수불가결하다 할 수 있다.
항우울제의 최적화
항우울제 치료에도 충분한 치료효과가 없는 경우, 가장 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할 점은 항우울제를 적절한 용량으로 충분한 기간 사용했는지 여부, 그리고 환자의 약물 순응도이다.
만약 약물 순응도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 원인을 확인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투여방법의 변경이나 순응도를 높이기 위한 면담 혹은 교육이 시행돼야 한다.
항우울제의 효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물 상호작용 또한 검토해야 한다. 이 외에도 환자의 유전적 특성에 따라 내약성, 약물의 대사나 효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cytochrome P450 유전자 검사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항우울제의 교체
항우울제의 교체는 일반적으로 기존 항우울제의 효과가 거의 없거나 내약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 선택한다. 항우울제 단독치료를 시행한다는 점에서 항우울제 병합요법이나 강화요법에 비해 안전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유리하다.
일반적으로 현재 약물의 내약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 치료반응이 매우 부족한 경우, 증상이 심하지 않거나 기능손상이 심하지 않아 치료반응을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경우 등에 항우울제 교체가 우선시될 수 있다.
항우울제 병합 또는 강화요법
두 가지 항우울제의 병합이나 다른 계열의 약물을 추가하는 강화요법은 여러 신경전달물질계에 대한 서로 다른 작용을 통해 추가적인 항우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약물 상호작용에 대한 우려 및 부작용 위험성 등의 단점 또한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항우울제 치료에 부분적 반응을 보이는 경우, 2가지 이상 항우울제 치료에 실패한 경우, 기존 항우울제에 내약성이 좋은 경우, 빠른 치료효과가 필요한 경우 등에 병합요법이나 강화요법을 사용할 수 있다.
강화요법을 위해서는 aripiprazole, quetiapine 등의 비정형 항정신병약물, lithium, 그리고 modafinil과 같은 정신자극제나 thyroid hormone 등에 대한 연구결과들이 제시된 바 있다.
전반적으로 연구결과들은 항우울제 교체나 병합요법에 비해 강화요법의 효과를 지지하고 있는데, 여러 메타분석에서 위약에 비해 우월한 항우울 효과를 보였다.
이 외에 esketamine은 미국과 유럽에서 2019년 이후 사용 중인 약물로, 국내에서도 2020년 6월 성인의 중등도에서 중증 치료저항성 우울증 및 급성 자살 생각 또는 행동이 있는 중등도에서 중증 주요우울장애의 치료에 대해 승인을 받았다.
Esketamine은 NMDA 수용체에 대한 길항작용을 통해 연접 전 glutamate 방출을 촉진시키고, 방출된 glutamate는 연접 후 AMPA 수용체를 활성화해 neurotrophic factor의 하방신호전달을 증진시켜 빠른 항우울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외에도 rTMS, ECT, tDCS, VNS 등이 약물치료와 함께 고려될 수 있다. 이 중 가장 효과적인 치료는 ECT인데, 메타분석 결과 약물치료 실패경험이 없는 환자에서의 치료반응률(65%)에 비해서는 낮지만 치료저항성 우울증에서도 48%의 반응률을 보인다.
rTMS와 tDCS 경우 sham 대조군에 비해서는 우월했지만 그 효과 크기는 작은 수준이었고, VNS 역시 일반적 치료에 비해 효과적이며, 24개월까지의 연구에서 지속적 치료가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심리·사회적 치료
그리고 우울증은 심리·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악화될 수 있고, 치료효과 역시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우울증에 대해 근거가 축적된 심리치료로는 인지행동치료, 대인관계치료, 재발방지를 위한 마음챙김기반 인지치료, 변증법적 행동치료, 행동활성화 치료 등이 있으며, 특히 인지행동치료는 치료저항성 우울증에 대해서도 여러 연구에서 효과가 입증됐다.
특히 치료저항성 우울증은 쉽게 만성화 될 수 있기 때문에 심리·사회적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공감, 이해와 같은 지지적 태도와 함께 상호협력적 치료적 관계를 수립해 질환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또한 역기능적 사고나 왜곡된 대인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인지적 개입과 단계적 목표달성을 통해 여러 수준의 치료성공에 대한 이해와 점진적 호전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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