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향의대 성형모 교수 |
◇ 요약
양극성장애는 대략 2~3%의 유병률을 보이는 정신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양극성장애의 특성을 조사한 역학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다.
국민건강보험자료 등을 통해 살펴보면 최근까지 양극성장애로 치료받는 환자들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양극성장애의 다양성으로 인해 치료가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형 양극성장애 치료가이드라인이 개발돼 임상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양극성장애 치료와 관련된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최근 이슈가 되고 있고,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는 문제들을 간략하게나마 다뤄보고자 한다.
◇ 국내 양극성장애 현황
전 세계적으로 양극성장애 유병률은 대략 2~3%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몇몇 연구들을 제외하고는 국내의 양극성장애 유병률 등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부족해 정확한 역학적 특성 등은 알려져 있지 않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국내에서 발표된 연구들을 살펴보면 2011년도에 진행된 국내 역학조사 Korean Epidemiologic Catchment Area survey(KECA 2011)에서 국내 양극성 스펙트럼장애의 유병률은 4.3%였다.
하지만 국내에서 실제로 치료를 받고 있는 양극성장애 환자들의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진행된 2008~2017년 국민건강보험자료 분석에서는 양극성장애의 1년 유병률(yearly prevalence rate)이 0.2%로 나타나 아직도 대부분의 양극성장애 환자들은 적절한 정신건강의학적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른 역학연구들에서 드러난 국내 양극성장애의 특성을 좀 더 살펴보면, 2013~2017년 국민건강보험 진료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5년간 양극성장애로 진료를 받은 환자의 수는 21.0%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70대 이상의 노령층에서 가장 많은 증가를 보였고, 20대 청년층에서의 증가도 두드러졌다. 성별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이 증가했고, 전체 환자도 여성이 더 많았다.
국내 양극성장애 환자들을 대상으로 시행된 임상연구에서 드러난 특성들을 정리해보면, 우선 환자들의 진료자료들을 분석한 임상연구에서 양극성장애 환자들 중 많게는 약 80%의 환자들이 하나 이상의 다른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반하는 정신질환은 우울장애, 불안장애, 물질사용장애 등이 가장 흔한 것으로 보고됐고, 알코올사용장애는 여성보다 남성환자에서 더 높은 유병률을 보였다.
의무기록을 후향적으로 조사한 연구에서는 국내 양극성장애 환자들 중 13.1%가 자살시도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고, 첫번째 삽화가 우울삽화였던 경우가 가장 중요한 위험요인이 된다는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임상적으로는 초기에 우울삽화로 시작하면서 우울장애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게 되는 양극성장애 환자들이 많이 있다. 이는 초기 우울삽화에서는 두 질환의 구분이 매우 어렵기 때문인데, 결국 나중에 (경)조증 삽화를 보인 후 양극성장애로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처음에는 단극성 우울장애로 진단을 받았다가 나중에 양극성장애로 진단이 변경된 비율을 조사한 국내 연구에서 단극성 우울장애로 진단된 환자들 중 이후 양극성장애로 진단이 변경되는 비율은 남성에서 1000명당 58.48명, 여성은 1000명당 50.97명으로 나타났고, 18~29세 사이에서 변경되는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형 약물치료 가이드라인
양극성장애는 각 삽화의 종류와 아형 등에 따라 임상양상이 매우 다양하고, 그에 따르는 약물의 선택 등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다. 따라서 단순한 진단에 의존한 약물치료를 할 수 없어 임상의들은 실제 임상에서 치료제의 선택과 치료전략의 수립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런 임상에서의 특수성을 극복하기 위해 1990년대부터 약물치료에 대한 치료지침이나 알고리듬이 관련 학회들을 중심으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발표한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Practice Guideline for Bipolar Disorder(APA-BP), 영국의 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and Clinical Experience Clinical Guideline(NICE), 캐나다의 Canadian Network for Mood and Anxiety Treatments Guidelines for the Management of Patients with Bipolar Disorder(CANMAT) 가이드라인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양극성장애 국제학회를 중심으로 발표된 치료지침으로는 International College of Neuro-Psychopharmacology Treatment Guidelines for Bipolar Disorder in Adults(CINP-BD), World Federation Society of Biological Psychiatry Guideline for Biological Treatment of Bipolar Disorder(WFSBP) 등이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형 약물치료 알고리듬의 개발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대한우울조울병학회는 2002년에 최초로 한국형 양극성장애 약물치료 알고리듬(Korean Medication Algorithm Project for Bipolar Disorder: KMAP-BP 2002)을 발표했다.
근거자료로 사용할 수 있는 연구들이 부족한 국내 실정을 반영해 전문가 설문을 이용하는 expert consensus 방식으로 제작됐다. 2002년 이후 4년을 주기로 정기적인 개정작업이 이뤄지고 있어서 2006년·2010년·2014년·2018년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22년에 개정판이 발간됐다.
해외의 가이드라인들과는 달리 국내의 실제 진료현장에서 부딪히게 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전문가들이 추전하는 치료제 선택 등을 담고 있어서, 실제 임상현장에서 환자들을 치료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치료전략·전술 및 이에 대한 적절성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임상의들에게 제공한다는 특징이 있다.
◇ 국내 양극성장애 치료현황과 과제
신약 도입
현재 국내 양극성장애의 약물치료와 관련된 현실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문제는 신약의 도입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신질환의 약물치료와 관련된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양극성장애 치료를 위한 약물도 많은 발전을 이뤘고, 다양한 새로운 약물들이 이미 임상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의학 외적인 이유들로 인해 매우 효과적이면서 안전성도 확인된 많은 약물들이 아직 국내에는 도입되지 못하고 있어 꼭 필요한 환자들에게 그 손해가 돌아간다는 점에서는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실제로 캐나다, 호주 등에서 가장 최근에 발표된 약물치료 가이드라인들에서 양극성장애의 1차선택제로 제시되고 있는 lurasidone, cariprazine, asenapine과 같은 약물들은 해외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사용되고 있지만 국내에는 아직 도입이 되지 못해 임상에서 사용이 불가능하다. 양극성장애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이런 약물들의 도입이 매우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장기지속형 주사제의 사용
양극성장애의 약물치료와 관련해 최근 1~2년 전부터 국내에서 많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비정형 항정신병약물의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양극성장애 치료에 도입하는 문제이다.
비정형 항정신병약물의 장기지속형 주사제가 조현병 치료에 먼저 도입이 되면서 치료순응도를 높여 장기적인 예후를 개선시키는 효과가 확인되며, 오래전부터 양극성장애에도 장기지속형 주사제의 도입이 시도됐다.
현재 양극성장애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비정형 항정신병약물의 경구제와 동일성분의 장기지속형 주사제들이 여러 개 나와 있지만, 국내에서 양극성장애 치료에 허가된 약물은 aripiprazole 장기지속형 주사제(AOM)가 유일하다.
AOM이 양극성장애 치료에 도입된 후 다양한 국내 연구를 통해 효과적인 측면에서 뿐 아니라 치료순응도와 관련된 문제들이 상당 부분 해소가 됐고, 복용하는 경구약물의 수도 의미 있게 줄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제적인 부담, 주사제에 대한 거부감, 주치의의 경험치 등이 극복돼야 할 문제로 제시되고 있지만, 앞으로 점점 그 사용과 임상적용은 더욱 확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항우울제 사용
끝으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양극성장애의 약물치료와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 중 하나는 양극성장애 우울삽화에서 항우울제의 사용에 관한 문제다.
최근 국내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양극성장애에서는 조증 및 급속순환형으로의 전환 등의 부작용으로 인해 항우울제의 사용을 매우 제한해 왔다.
하지만, 최근 개발돼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 등의 항우울제를 사용한 많은 연구들에서 우울삽화에 대한 우수한 치료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되면서 제한적이나마 양극성장애에서 항우울제 사용을 옹호하는 의견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양극성장애 2형이나 불안장애가 동반된 경우 등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018년에 발표된 국내 연구에서 국내 양극성장애 환자들 중 약 3분의 1에서 항우울제가 처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국내에서도 양극성장애에서 항우울제 사용과 관련된 보다 다양한 연구와 면밀한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이전에 비해 ‘항우울제를 사용할 것인가’ 보다는 ‘어떤 환자에게 항우울제를 사용할 것인가’로 논의의 초점이 옮겨지고 있지만, 여전히 항우울제는 양극성장애 환자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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