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면·각성에 도움되는 파장으로 다변화시켜 맞춤형 조사해야
수면장애는 현대인 신체·정신·인지기능에 치명적
서울의대 정기영 교수 |
“아무리 좋은 침대에서 좋은 베개를 쓰더라도 잠자리에서 핸드폰을 보느라 빛(조명)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수면위생(sleep hygiene)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유해할 수도 있다. 그 만큼 빛과 조명이 수면건강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 할 수 있다. 따라서 24시간 인공조명에 노출되는 현대사회에서는 바야흐로 조명(빛)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단일 파장의 빛을 획일적으로 조사하는 방식에서 아침·점심·저녁 시간에 따라 수면,각성 및 업무에 적합한 파장과 조도를 선택해 맞춤형 조사를 하는 이른바 인간중심조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현대인의 교란된 생체시계를 회복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수면건강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수면의학·수면장애 분야의 권위자인 서울의대 정기영 교수(서울대병원 신경과,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는 빛을 통한 수면장애 예방·관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현대사회에서 수면건강이 의학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고, 이에 따라 의학적 관점에서 예방과 관리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기영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1명은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건강보험 자료의 분석결과를 보면 2021년 기준 수면질환 관련 수진자가 110만명에 달하는데, 문제는 이 수치가 연간 8%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환자수가 늘었다기 보다는 수면질환에 대한 인지율과 수면다원검사의 접근성이 개선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되는데, 향후 환자수는 150만~200만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설명이다. 정 교수로부터 의학적 관점에서 수면장애를 어떻게 예방·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들어봤다. |
Q. 수면을 바라보는 의학적 관점은?
의학적 관점에서 수면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조명해볼 수 있다.
첫째 수면의 양적인 측면으로, 하루 중 얼마나 자느냐의 문제다. 수면부족이 대표적이다. 두번째로는 잠을 제대로 자는지, 즉 수면의 질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불면증,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램수면행동장애 등이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수면 타이밍(시기)의 문제인데, 언제 잠들어서 언제 깨느냐에 따라 수면장애는 물론 여타 만성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과 관련된 수면장애로, 교대근무자에서 다수 발생한다.
결국 양·질·타이밍 모두가 정상범위에 있어야 건강한 수면이라 말할 수 있다. 반면 이들 세 가지 측면에서 하나라도 교란이 발생하면 수면장애가 유발될 수 있다.
Q. 수면장애는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수면의 양·질·타이밍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신체적·정신적·인지적 기능의 비정상화가 유발될 수 있다. 즉 생체시계의 정상적인 수면리듬이 깨지면, 신체의 모든 기능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때문에 수면장애 또는 수면질환은 직접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심뇌혈관질환이나 암 등은 물론 우울증이나 치매와 같은 신경정신질환의 이환 및 예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교대근무자들에서 나타나는 일주기 리듬의 문제로 인한 수면장애다. 교대근무자들은 일반인과 비교해 유방암 또는 전립선암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치매위험도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국제암위원회에서는 교대근무를 잠재적 발암물질(인자)로 규정하고 있다.
Q. 우리나라에서 수면장애의 심각성은?
양적인 측면에서는 우선 수면부족을 평가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국가별 역학조사 결과를 보면, OECD 회원국 중 한국인의 수면시간이 가장 적다. 우리나라 국민의 수면시간은 선진국 대비 평균 1시간 정도 적은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다.
질적인 측면에서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수면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40% 정도만이 “만족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또한 가장 흔한 질적인 측면의 수면장애인 불면증과 수면무호흡증은 우리나라 성인의 10%와 20%가량이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주기 리듬 측면에서는 생체시계 교란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경우가 교대근무자들이다. 의사·간호사·군인·경찰·택배업계 종사자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을 모두 합치면 국내에서 일하고 있는 교대근무자들은 20%가량일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 모두가 잠재적인 수면장애 환자일 수도 있다는데 있다.
Q. 빛과 수면은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나?
모든 생명체에는 수면·활동에서 소화·배설에 이르기까지 신진대사의 일정을 프로그램화시켜 놓은 생체시계가 있다. 그런데 이 생체시계를 관장하고 조절하는 환경적 요인 중에 햇빛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구의 자전(自轉) 환경에서 빛이 눈으로 들어가 마스터 클락(master clock)이라 불리는 시신경교차상핵(SCN)에 이르면, 여기서부터 빛의 작용에 의한 생체시계가 리셋되고 조절된다.
즉 아침에는 강력한 파란색 파장의 480nm에 가까운 빛이 생체시계에 작용해 각성을 야기하고, 잠에서 깨 일상생활을 영위하도록 돕는다. 반면 밤에는 노란색 파장을 중심으로 빛을 덜 받게 되면서 수면모드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다.
Q. 빛이 현대인의 수면을 좌우한다는 것인가?
실내활동이 많아지면서 빛을 충분히 받아야 할 시간에 적게 받고, 소량으로 빛을 받아야 할 시간에는 조명에 과도하게 노출되면서 현대인의 생체시계가 교란되고 있다.
이로 인해 수면기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충분한 양의 햇빛과 어둠에 노출되는 전기가 없는 원시부족들은 불면증을 겪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24시간 인공조명에 노출되면서 적절한 양의 빛을 공급받지 못하거나 과도하게 노출되는 삶을 살고 있다.
원시인과 현대인의 생체시계가 완전히 다르다고 보면 된다. 교란된 생체시계를 원시인 시대의 수준으로 되돌려야 현대인도 비로소 적절한 양질의 수면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Q. 인위적인 광치료가 필요한 이유는?
광(光)치료는 빛을 통해, 교란된 생체시계를 리셋하고 조절해 궁극적으로는 수면의 질과 일주기리듬 문제를 개선하는 방법 중 하나다. 수면장애의 예방·관리 차원에서 적절한 수면환경을 조성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다만 현대사회에서는 햇빛에 노출되는 빈도와 양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인공조명을 통해 수면과 각성에 적절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아침에 480nm의 파란색 파장 조명을 인위적으로 쏘여서 수면의 양과 질을 조절하는 것은 물론 주간시간대의 각성 및 집중력·인지기능 개선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저녁에는 노란색 파장의 조명에 노출시켜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이를 통해 숙면을 유도할 수도 있다.
Q. 광치료의 임상근거는?
‘조명(빛)의 파장에 따른 수면의 질 개선혜택’에 관한 연구를 J Sleep Med 2023 저널에 게재한 바 있다.
국내 인구를 대상으로 아침과 저녁에 각각 파란색과 노란색 파장이 많이 포함된 조명을 조사했을 경우 수면의 질 개선이 어떤 차이를 나타내는지 보고자 했다.
결과는 시간에 따라 적합한 파장의 조명에 노출되었을 때 수면의 질과 규칙성이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돈 기자 sdlee@mostonli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