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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ypertension 위기와 기회

기사승인 [99호] 2021.05.11  1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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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고혈압, K-hypertension이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K-hypertension은 가장 최근의 역학보고에서 (20세 이상 성인인구의)유병률이 29%로 △유병자 중 고혈압인줄 알고 있는 인지율은 67% △알고 치료를 받고 있는 치료율은 63% △혈압이 목표치 이내로 강하·유지되고 있는 조절률은 47% 수준이다. 

특히 유병자 기준 조절률이 아직도 절반의 법칙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외에서의 고혈압 진단기준 변화에 따라 계속 낮아지고 있는 목표혈압으로 인해 조절률을 더 끌어 올려야 한다는 과제의 달성이 요원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고령층에서 발생하는 고혈압, 즉 노인 고혈압과 고혈압전단계의 유병률 등이 K-hypertension을 위기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발 1차위기에

K-hypertension이 위기국면에 봉착하게 된 것은 미국서 전세계로 타진된 고혈압 정의·진단기준의 변화 움직임이 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 심장학계가 고혈압 진단의 경계치를 낮춰 조정하며 고혈압의 유병률·진단·치료 등에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자,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심장학계가 큰 고민을 떠안게 된 것이다.

미국심장학회(ACC)와 심장협회(AHA)는 지난 2017년 발표한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 과거 고혈압전단계에 해당했던 혈압 130~139/80~89mmHg 구간을 고혈압1단계로 정의했다. 이에 따라 과거 고혈압1단계였던 140/90mmHg 이상 구간은 고혈압2단계로 격상됐다. 이 권고안을 그대로 임상에 적용하면, 고혈압전단계를 포함해 130/80mmHg 이상부터 고혈압 이환으로 진단할 수 있게된다.

美 심장학계가 진단기준을 낮춘데는 고혈압을 조기에 진단하고 보다 빨리 적극적으로 치료하겠다는 혁신의 의지가 담겨 있다. 과거 고혈압전단계 후반구간에 해당하는 130~139/ 80~89mmHg부터 정상혈압과 비교해 심혈관질환 위험이 2배가량 증가하는 만큼, 이 구간을 고혈압1단계로 정의해 빠른 진단과 치료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심산이다.

고혈압 진단과 치료의 혁신을 이루겠다는 것이 의도였지만, 이 변혁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부작용도 수반하고 있었다. 美의 새 기준을 현실화할 경우 고혈압 환자의 폭발적인 증가를 감내해야 한다.

ACC·AHA는 가이드라인에서 고혈압 유병률 변화를 수치로 보여줬다. 2017년판의 기준 적용 시 미국의 고혈압 유병률(혈압 130/80mmHg 이상 또는 항고혈압제 사용 자가보고)은 46%로, 성인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고혈압으로 분류된다. 이전의 기준(혈압 140/90mmHg 이상 또는 항고혈압제 사용 자가보고)을 적용하면 유병률은 32% 수준이다.

미국발 고혈압 진단기준을 수용할 경우, 유병률 폭증을 피할 수 없기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대한고혈압학회 측에 따르면, 새 기준을 수용하면 성인인구의 32.0%였던 고혈압 유병률이 50.5%로 급증한다. K-hypertension을 책임지고 있는 대한고혈압학회 측이 미국발 1차위기에 직면해 고혈압 정의·기준 변화를 두고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대한고혈압학회는 미국의 발표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2018년 고혈압 진료지침’을 공개, 고혈압 진단기준은 과거의 전통을 유지·고수하면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 반면 치료에 있어서는 목표혈압을 더 내리는 등 진보적 태도를 견지했다. 이로써 유병률 폭증에 따른 고혈압 대란은 일단 피할 수 있게 됐다.

목표혈압은 낮아지고

한편 미국이 고혈압 진단기준을 낮춘 결정은 연이어 목표혈압의 강하를 촉발하며 K-hypertension에 2차위기를 가져왔다. ACC·AHA는 고혈압 진단기준을 130/80mmHg 이상으로 조정하면서 고령인구를 포함한 고혈압 환자의 전반의 혈압을 130/80mmHg 미만까지 낮추도록 권고했다.

과거 목표혈압을 140/90mmHg 미만으로 잡아왔던 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美 심장학계로부터 시작된 목표혈압 강하 움직임은 이후 전세계적으로 파장을 일으키며 이전보다 강력하고 엄격한 혈압조절 패러다임을 받아들일 것인지 선택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한고혈압학회가 고혈압 환자 전반에 140/90mmHg 미만조절을 권고하면서도 심혈관질환 고위험군의 목표혈압은 130/80mmHg 미만으로 낮추면서 빠르고 강한 혈압조절 패러다임을 외친 미국의 주문에 호응했다.

K-hypertension의 아픈 손가락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목표혈압이 강하를 거듭함에 따라, 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목표치 이내로 달성·유지하는 조절률의 개선은 여전히 요원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고혈압 치료에 있어 이 조절률이 아픈 손가락에 해당하기 때문에 낮아지는 목표혈압이 늘상 반가울 수는 없다.

대한고혈압학회 이사장을 역임한 충북의대 조명찬 교수(충북대병원 심장내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고혈압 인지·치료·조절률이 가파르게 상승한 후 최근 10년간은 정체돼 있는 모습이다. 특히 고혈압 유병자 중 인지율(67%, 2020 팩트시트 기준)과 치료율(63%)과 달리 조절률(47%)은 50% 또는 절반의 법칙 문턱을 넘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치료를 받고 있는 고혈압 환자의 조절률이다. 치료자 기준 조절률은 70%(2018 팩트시트 기준) 대인데, 이는 치료를 받고 있는 고혈압 환자의 상당수가 혈압이 적절히 조절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항고혈압제 치료를 꾸준히 잘 받으면 혈압을 목표치 미만으로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설상가상 노인 고혈압

K-hypertension이 직면한 위기국면에는 노인 고혈압도 일조하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가 한국인의 고혈압 관리와 관련해 최대 당면과제 중 하나로 노인 고혈압을 꼽고 있는 것만 봐도 고령층에서 다발하는 고혈압의 무게를 엿볼 수 있다.

대한고혈압학회의 고혈압 진료지침에 따르면, 60세 이상으로 고령대가 되면 남성과 여성 모두 고혈압의 유병률이 50% 이상인 것으로 집계된다.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해 있는 우리나라에서 고연령대 2명 중 1명 꼴로 고혈압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Korea Hypertension Fact Sheet 2018’에 명시된 유병인구 수를 봐도 고연령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기준 19세 이상 성인인구 중 고혈압 유병인구 수가 1100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65세 이상에서 유병인구 수는 440만명으로 50~64세와 함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노인 고혈압은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수축기단독고혈압과 깊은 연관을 맺으며 심혈관질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수축기단독고혈압은 수축기혈압이 140mmHg 이상이면서 이완기혈압은 90mmHg 미만인 경우를 지칭하는데, 고령으로 갈수록 수축기혈압의 상승에 의해 고혈압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간과할 수 없는 고혈압전단계

한편 심혈관질환 위험증가와 연관돼 있는 고혈압전단계의 유병률이 높다는 것도 K-hypertension의 위기국면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 고혈압 진료지침에 따르면, 고혈압전단계는 혈압 130~139/80~89mmHg 구간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수축기혈압 120~129mmHg와 이완기혈압 80mmHg 미만은 주의혈압으로 분류된다.

특히 가이드라인의 역학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주의혈압과 고혈압전단계를 모두 포함할 경우 유병률은 25.9%(남성 30.8%, 여성 20.8%)에 달한다. 고혈압 유병률(29.1%)까지 합치면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인구의 55%가 정상혈압보다 높은 혈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정상혈압과 고혈압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고혈압전단계가, 아직 고혈압 발생 이전인데도 문제로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이 구간부터 고혈압 합병증인 심혈관질환 위험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대한고혈압학회는 가이드라인에서 “일반적으로 115/75mmHg부터 시작해 혈압이 20/10mmHg씩 오를 때마다 허혈성 심장질환이나 뇌졸중에 의한 사망위험이 두 배가량 상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확히 고혈압전단계 구간부터 심혈관질환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위기극복에 병용·복합제

하지만 K-hypertension을 이야기할 때 지금까지 살펴 본 다소 우울한 소식만 언급되는 것은 아니다. K-hypertension에게도 작금의 위기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희망적인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가장 먼저 위기국면의 돌파카드로 언급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임상적용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의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는 낮아지는 목표혈압에 따라 강력한 혈압조절요법을 빠르게 적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더불어 강력한 혈압조절요법으로는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을 최우선 전략으로 꼽고 있다. 더욱이 병용요법의 적용에 있어 순응도가 강조되는 가운데, 여러 성분을 하나의 정제에 혼합한 단일제형복합제(single pill combination, SPC)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의 ‘Korea Hypertension Fact Sheet 2020’을 보면, 우리나라의 고혈압 치료에 있어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이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팩트시트의 항고혈압제 처방패턴 변화를 보면, 2018년 기준으로 한 가지 약제를 처방받는 경우(1제요법)가 40.7%였던 반면, 2제 이상의 항고혈압제 처방은 59.3%로 단독치료보다 우위를 점했다. 세부적으로는 2제요법이 43.2%, 3제요법 이상이 16.1%로 두 가지 항고혈압제를 병용하는 처방이 다수를 차지했다.

병용요법을 약제조합 별로 보면, RAS(레닌·안지오텐신계)억제제 + 칼슘길항제(CCB)가 61.1%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 뒤로는 RAS억제제 + 이뇨제(22.7%), CCB + 베타차단제(5.0%), RAS억제제 + 베타차단제(4.7%), CCB + 이뇨제(3.4%) 등이 순위를 지켰다. 3제요법에서는 RAS억제제 + CCB + 이뇨제(57.0%) 조합이, 4제요법은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 + CCB + 이뇨제 + 베타차단제(75.2%)가 가장 많은 처방기록을 달성한 것으로 보고됐다.

특히 미국의 경우, 항고혈압제 병용처방의 증가와 함께 고혈압 조절률의 상승이 관찰된 것으로 조사된 바 있어 향후 병용처방의 증가에 따른 K-hypertension의 치료성과에 학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K-hypertension → K-research

K-hypertension을 대상으로 한 한국인 대상 임상연구(이하 K-research)가 늘고 있다는 것도 반가운 소식 중 하나다. 현대의학에서는 고혈압 치료 역시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에 기반하고 있다. 고혈압과 관련한 가이드라인 권고안 하나를 만들때도 높은 등급의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해당 권고안의 신뢰도를 담보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 고혈압의 치료에 있어서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 늘 지적돼 왔다. 때문에 한국인 고혈압 환자의 진단과 치료를 권고하는 한국형 진료지침을 만들 때도 늘상 자국 임상연구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점이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국인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역학 및 관찰연구는 물론 약제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시험하는 임상연구도 양산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먼저 한국인 대상으로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 피마사르탄을 검증한 FAST·FANTASTIC·FITNESS 등이 국내 석학 연구팀에 의해 진행돼 관심을 끈 바 있다.

신규 ARB 계열에 속하는 아질사르탄 메독소밀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한국인 대상으로 검증한 연구도 있다. 여기에 한국인 고혈압 환자에서 ARB/칼슘길항제(CCB) 단일제형복합제의 효과 및 내약성을 들여다 본 The K-Central Study 등 일련의 무작위·대조군 임상연구들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상돈 기자 sdlee@mostonline.co.kr

<저작권자 © THE MOS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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