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한국인 만성질환은 용광로·비빔밥이자 복합형

기사승인 [133호] 2024.03.12  09:08:59

공유
default_news_ad2

- 전통적 유병특성에 서구화 결과물까지 혼재
대사증후군 거쳐 심뇌혈관질환이 종착역

만성질환(慢性疾患)의 사전적 의미는 ‘증상이 그다지 심하거나 뚜렷하지 않으면서 오래 끌고 낫지 않는 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또는 ‘갑작스러운 증상이 없이 서서히 발병해 치료와 치유에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질환’을 통칭하는 의미로도 쓰인다. △‘증상이 없이’, △‘서서히 진행해’, △‘치료가 어렵다’는 것이 특징이다.

우선 발병돼도 겉으로 인지할 수 있는 증상이 없다. 고혈압·이상지질혈증·당뇨병 등은 이미 진행 중이더라도 당사자가 증상을 못 느끼니 당장 불편함이 없어 진단도 받지 못하고 치료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들 만성질환은 소리 없이 다가와 무장해제된 상태의 몸을 야금야금 좀먹다가 마지막 치명타를 가한다. 여기서 치명타란 합병증을 의미하는데, 바로 심뇌혈관질환 이환 또는 이에 따른 치명적 장애나 사망을 의미한다.

고혈압·이상지질혈증·당뇨병 등 만성질환이자 심뇌혈관질환 위험인자의 또 다른 특징은 이들이 잘 뭉친다는 것이다. 위험인자들이 유유상종(類類相從)한다는 것이다. 이는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귀듯 패거리를 형성하고 몰려다닌다’는 뜻인데, 심혈관질환 위험인자들의 행동양식과 대사증후군의 병태생리가 맥을 같이 한다.

고혈압·이상지질혈증·당뇨병 또는 이들의 집합체인 대사증후군은 동시에 일괄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혈관의 구조·기능적 변화를 초래한다. 이는 곧 혈관에 죽상경화반을 동반하는 죽상동맥경화증을 야기시킨다. 최종적으로 죽상동맥경화증이 장기간의 악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불안정형 죽상경화반의 파열이 일어날 수 있다. 여기서 파생되는 혈전 또는 색전이 관상동맥이나 뇌혈관을 막으면 심뇌혈관질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K-만성질환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은 만성질환의 일반적인 병태생리를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만성질환은 지역·인종별로 차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최근 들어 만성질환의 지역·인종 간 유병특성 차이에 대한 보고들이 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인과 서양인 사이의 유병특성 차이가 속속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특성이 유전 또는 환경적 요인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인 만성질환(K-만성질환)은 서양인과 차별화되는 동시에, 서구화의 결과물로 이들을 따라가는 동질화의 패턴이 함께 뒤엉켜 있는 양상이다. 전통과 유전을 고수하고 있으면서도 서구화를 적극 수용하는 과정에서 서양인의 유병패턴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 만성질환의 유병특성은 크게 두 갈래로 요약해볼 수 있다. 첫째는 오랜 기간 해당 지역만의 독특한 생활습관이나 지리·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서양과 두드러지게 구별되는 질환특성이 나타난다. 이 경우 유전적 요인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오랜 기간 고수해 오던 전통적 생활습관이 서양을 따라가며 변모하기 시작하면서, 질환의 특성 또한 점차 서구화돼 가고 있는 현상이다. 현대사회에서 두드러지게 관찰되는 동향으로, 과도기 환경의 변화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한국인의 만성질환은 전통·유전적 특성과 서구화의 산물이 혼재돼 있는 용광로형·비빔밥형·복합형의 병태생리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K-Diabetes

복합형 만성질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는 당뇨병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병태생리인 인슐린분비장애에다가 최근 들어 늘고 있는 인슐린저항성까지 겹쳐, 비비만형과 비만형 당뇨병이 뒤엉키면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친 단일전략 만을 고집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전통·유전적 특성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서구의 기준으로 볼때 마른 체형에서도 당뇨병이 상당수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비비만형 또는 마른형 당뇨병이 서양인에 비해 많았다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낮은 인슐린분비능이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1992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진료받은 당뇨병 환자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2형당뇨병 가운데 비만이 아닌 경우가 68.5%로 비만형(22.6%)을 크게 앞서기도 했다. 격차가 좁혀지고는 있으나, 2000년 이후의 국민건강영양조사 등 대규모 역학조사에서도 같은 현상이 관찰돼 왔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인종은 수천년 동안 농경사회가 지속되면서 식습관 등에 있어 췌장 베타세포의 활동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 왔다. 아시아인의 전통적인 식생활습관으로 인해 비만이나 인슐린저항성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인슐린분비능 개선에 대한 요구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는 것이다. 서양인은 비만과 인슐린저항성을 담보하는 생활습관으로 인해 베타세포의 기능이 상당히 활발해진 것에 반해, 아시아인은 췌장 기능과 함께 베타세포의 양·질적인 측면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서구화의 결과물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인 당뇨병의 유병특성에 변화가 관찰되고 있다. 대한당뇨병학회의 ‘Diabetes Fact Sheet in Korea 2022’에 따르면, 국내 당뇨병 환자의 절반이 넘는 54.4%(1단계 41.5%, 2단계 11.0%, 3단계 1.9%)가 비만을 동반하고 있다. 특히 인슐린저항성과 연계되는 복부비만 동반율은 63.3%에 달한다. 국내 진행된 SURPRISE 연구에서는, 우리나라 2형당뇨병 환자의 병태생리를 조사한 결과 인슐린저항성 원인이 60%, 비만과 복부비만은 각각 50%에 달하는 등 유병특성의 변화가 관찰됐다.

비빔밥형

현재의 한국인 당뇨병 유병특성을 종합해 보면, 병인론적 측면에서 인슐린분비장애와 인슐린저항성의 비중에 큰 차이가 없고 비비만형과 비만형 당뇨병이 공존하고 있는 양상이다. 대체적으로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인슐린분비장애에 의한 당뇨병 발생이 다수를 차지하던 과거에서, 이제는 비만 등으로 인한 인슐린저항성이 늘어나면서 당뇨병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결국 우리나라 2형당뇨병 환자의 치료 시에 인슐린분비능과 인슐린저항성 개선기전의 약제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 약물의 혈당조절 효과를 비교·분석한 결과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혈당강하제 1차치료 임상시험으로 불리는 PEAM 연구가 그 주인공이다.

2형당뇨병 환자의 1차치료 전략에 대한 다기관 무작위·대조군 임상연구로 해외에 UKPDS가 있다면, 국내에는 PEAM 연구(Diabetes & Metabolism Journal 2011)가 있다. 비비만형과 비만형 당뇨병 환자가 절반씩 포함된 한국인을 대상으로 설폰요소제, 메트포르민, 티아졸리딘디온계의 혈당조절 효과를 비교한 결과다.

국내 15개 대학병원에서 경구혈당강하제 치료경험이 없는 당뇨병 환자들을 1년간(2007~2008년) 세 가지 계열의 약제군으로 무작위 배정해 치료·관찰했다. 만 30세 이상 65세 미만으로 당화혈색소(A1C)가 6.5%를 초과하고 9.5% 이하인 신규 2형당뇨병 환자들에게 설폰요소제(118명), 메트포르민(114명), TZD(117명)를 각각 투여했다. 연구종료 시점에서 A1C는 설폰요소제(-0.89±0.76%), 메트포르민(-0.92±0.96%), 티아졸리딘디온계(-0.82±0.79%) 그룹 모두에서 기저시점 대비 유의한 감소효과를 나타냈다.

 

 K-Dyslipidemia

복합형 특성이 병태생리를 지배하기는 한국인의 이상지질혈증(K-Dyslipidemia)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인종에서 우세를 보이던 고중성지방혈증과 저HDL콜레스테롤혈증이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으로 인식돼 온 고LDL콜레스테롤혈증이 최근 20년 사이에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LDL콜레스테롤(LDL-C)이 높은 병태의 이상지질혈증 역시 서구화의 산물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고LDL-C·고TG·저HDL-C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가 보고한 ‘Dyslipidemia Fact Sheets in Korea’를 보면, 한국인 이상지질혈증 유병패턴은 물론 치료동향의 변화를 일견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관찰되는 한국인에서 고LDL콜레스테롤혈증, 고중성지방혈증, 저HDL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의 변화를 보면, 이상지질혈증 유병패턴이 매우 복잡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고LDL콜레스테롤혈증

최근 한국인의 이상지질혈증 패턴이 점차 서구화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LDL콜레스테롤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과거 한국인의 이상지질혈증은 고중성지방혈증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LDL콜레스테롤혈증의 유병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이상지질혈증과 전쟁의 판세가 재편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는 최근 20세 이상 성인에서 이상지질혈증 유병률 및 관리현황을 총망라한 ‘이상지질혈증 팩트시트(Dyslipidemia Fact Sheets in Korea, 2022)’를 발표했다. 학계로부터 주목받은 대목은 고LDL콜레스테롤혈증(LDL-C≥160mg/dL) 유병률의 변화다.

먼저 2015년판 팩트시트에서 2013년 기준 30세 이상 성인인구의 고LDL콜레스테롤혈증·고중성지방혈증·저HDL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은 15.5%·18.6%·28.4%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높은 LDL콜레스테롤 병태에 비해 중성지방이 높고 HDL콜레스테롤은 낮아 서양인과 비교되는 아시아 지역·인종의 전형적인 유병패턴이 그대로 관찰된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 유병특성은 2018년 보고서에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 ‘Dyslipidemia Fact Sheets in Korea 2018’에서 고LDL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2016년 기준 30세 이상 성인인구)은 17.6%로 변동이 일어났다. 한국인의 고LDL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은 2020년 보고서에서 다시 한 번 상승곡선을 그린다. ‘Dyslipidemia Fact Sheets in Korea 2020’에서 2018년 기준 20세 이상 성인인구의 고LDL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은 19.2%에 달했다. 20세 이상 성인인구를 포함시킨 결과라 해도 전체 성인인구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수치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보고서인 팩트시트 2022에서는 3개 이상지질혈증 병태의 유병률이 20.4%·15.5%·16.7%로 고LDL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이 정점을 찍고 있다.

죽상동맥경화증 호발성 이상지질혈증

최근까지의 이상지질혈증 팩트시트를 종합해 보면, 작금의 한국인 이상지질혈증은 서구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고 여겨졌던 LDL콜레스테롤 수치가 점진적으로 증가하면서 고LDL·고중성지방(TG)·저HDL의 병태 중 어느 하나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한국인의 이상지질혈증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복합형 이상지질혈증의 공략법을 익혀야 한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상돈 기자 sdlee@mostonline.co.kr

<저작권자 © THE MOS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