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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I 임상근거 놓고, 환자 설득하자”

기사승인 [133호] 2024.03.15  16: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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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률 감소 근거까지 있는데, 기침에 처방 소극적

나득영심혈내과의원 나득영 원장

대한고혈압학회 고혈압 진료지침에서 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ACEI)는 심부전, 좌심실비대, 관상동맥질환(CAD), 만성신장질환(CKD), 뇌졸중, 노인 수축기단독고혈압, 심근경색 후, 심방세동 예방, 당뇨병 등을 타깃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권고돼 있다. 유럽이나 북미의 가이드라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득영심혈내과의원의 나득영 원장(전 동국대경주병원장)은 “심혈관질환 초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고혈압 환자의 항고혈압제 치료에 ACEI가 1차적으로 고려되고, 같은 RAS억제제 계열인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는 ACEI에 불내약성으로 사용이 힘든 경우 대체제로 권고된다”며 1차치료 선택으로서 ACEI의 역할을 강조했다. 심혈관질환 위험도에 따른 ACEI의 1차치료 권고안은 심혈관·심장·신장질환 혜택에 관한 일련의 임상근거에 기반한다. 나 원장은 이렇게 풍부한 임상근거에도 불구하고 리얼월드에서 ACEI의 처방률이 낮아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Q. 혈압강하 측면에서 ACEI의 특성은?

첫째, ACEI 치료경험이 없는 환자에게 페린도프릴을 투여하면 기저시점(baseline) 대비 수축기혈압을 22mmHg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 더불어 다른 ACEI나 다른 계열의 항고혈압제와 비교해도 훨씬 더 강력한 혈압강하 효과가 담보된다.

둘째, ACEI 계열 중에서 반감기가 가장 길다는 것이 페린도프릴의 또 다른 특성 중 하나다. 항고혈압제의 작용시간 평가에 T/P ratio가 사용되는데, 페린도프릴은 이 부문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약제에 속한다. 지질 친화성(high lipophilicity)으로 인해 조직 수용체에 결합력이 강한데다가 반감기까지 길어 1일 1회 복용으로 24시간 혈압조절이 가능하다.

셋째, 페린도프릴은 ASCOT나 HYVET 등 치료관찰을 5년 이상 끌고 간 장기간 임상연구에서 초기에 나타난 혈압강하 효과가 종료시점까지 반등하지 않고 일관되게 유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혈압조절 지속성 측면에서 페린도프릴의 우수한 혜택을 시사한다.

Q. ACEI의 심혈관 혜택은 어느 정도인가?

우선 심부전 또는 좌심실비대를 동반한 고혈압 환자에서 ACEI가 권고된다. EUROPA 연구에서는 안정형 CAD 환자에게 페린도프릴을 투여한 결과, 위약 대비 심혈관사건(MACE) 위험감소가 관찰됐다. 이 결과는 CAD 동반 고혈압 환자에게 ACEI를 우선 권고하는데 근거로 작용했다. 또한 페린도프릴은 고령층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한 HYVET 연구에서 사망률을 비롯한 심혈관사건 위험을 유의하게 감소시켰다. 노인 수축기단독고혈압에 ACEI가 권고되는 것도 이에 근거했다.

심근경색 후 좌심실수축기능이 저하돼 있는 고혈압 환자에게도 ACEI가 1차적으로 고려된다. ACEI는 심방세동의 예방을 목적으로도 사용된다. 좌심방의 리모델링으로 심방세동 위험이 증가돼 있는 고혈압 환자에게 ACEI를 써서 심방세동 예방을 유도할 수 있다.

Q. 당뇨병이나 신장질환과의 연관성은?

ADVANCE 연구에서 당뇨병 환자에게 ACEI 페린도프릴과 이뇨제 인다파미드 고정용량 병용요법을 적용해 주요심혈관사건(MACE) 및 신장질환 위험을 유의하게 감소시켰다.

또한 ADVANCE-ON 연구에서는 당뇨병 환자에게 조기에 적극적 혈압관리를 적용해, 10년 이후까지 장기적으로 심혈관사건 및 사망위험 감소혜택을 개선·유지할 수 있었다.

이상의 두 연구는 초기에 ACEI 계열의 항고혈압제를 통해 집중적인 혈압치료를 적용하는 것이 이후 장기적으로 심혈관사건 및 사망위험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Q. 사망률 등에서 ARB 대비 ACEI의 혜택은?

메타분석을 통해 RAS억제제의 사망률 감소혜택 차이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먼저 ACEI 페린도프릴을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에서 사망위험 감소혜택이 관찰된 바 있다. 이에 반해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 계열에서 사망률 감소결과를 보고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다. European Heart Journal 2012에 실린 메타분석을 봐도, ACEI 치료그룹에서는 유의한 사망률 감소혜택이 확인되지만 ARB 그룹에서는 관찰되지 않았다.

Q. 한국인 대상의 임상근거도 있나?

심근경색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등록연구사업인 KAMIR를 통해 ACEI의 우위를 엿볼 수 있다. 당뇨병 동반 비ST분절상승 심근경색증(NSTEMI) 환자를 대상으로 한 KAMIR 하위분석에서 주요심혈관사건이 ARB 대비 적게 발생했다. 65세 이상의 고령 심근경색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하위분석에서도 뇌졸중이나 심부전과 관련해 ACEI의 상대위험도가 더 낮은 것으로 보고됐다.

Q. 리얼월드에서 ACEI의 처방현황은?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의 패러다임이 개원가를 비롯한 리얼월드에서 잘 실천되고 있다. 심부전·CAD·CKD·뇌졸중·당뇨병 등과 관련한 임상근거에 기반해 ACEI를 1차치료에 권고하는 것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실제 임상현장에서 이러한 가이드라인의 권고안을 얼마나 숙지하고 이를 치료에 반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근거중심의학을 추종하는 서양의 경우 ACEI의 차방률이 2~3배 정도 높은 것도 ACEI 권고안에 대한 실천의지가 강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제 임상에서 ACEI의 처방률이 점차 감소하고 있어 안타깝다. 우선 ACEI의 임상근거에 대한 관심도가 아직 높지 않다. 또 처방 시에 마른기침의 발현율이 서양인 대비 아시아인에서 조금 더 높고, 이에 대한 환자의 호소로 인해 선뜻 ACEI 처방에 손이 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Q. 1차의료기관에서 ACEI 처방확대를 위한 복안은?

처방의 당사자인 임상의들이 ACEI의 권고안과 함께 근거가 된 임상연구 결과를 숙지하고, 이를 환자에게 잘 설명하는 것이 최선이다. 특히 1차의료기관의 경우 ACEI 처방을 통한 하드 엔드포인트 개선의 경험이 힘든 환경이기 때문에, 심혈관질환 고위험 또는 초고위험군 고혈압 환자에서 ACEI 임상근거를 숙지하고, 이에 기반해 ACEI 처방에 대해 환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관 학회 차원에서 ACEI의 임상근거에 대해 적극 계도하는 것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마른기침과 관련해서는 약물과 부작용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파악해 기침의 원인이 약물에서 기인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면 치료를 지속하고, 사전에 ACEI 효과의 이면에 뒤따르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

또한 고혈압 2단계와 같이 중증인 경우에는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이 권고되는데, ACEI에 비하이드로피리딘계 칼슘채널차단제(CCB)를 더하면 기침의 빈도를 줄일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상호보완을 기대한 수 있는 병용요법을 통해 부작용 위험은 줄이고 효과는 극대화시키는 전략적 선택도 가능하다고 본다.

 

이상돈 기자 sdlee@most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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